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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역사] 근대 의학의 혁명 조지프 리스터 : 수술실을 살린 소독의 혁명가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소독'이라는 개념, 하지만 한때는 의사들이 수술 후 손을 씻지 않고 환자를 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의사가 발견했습니다. '우리의 손으로 환자를 죽이고 있다!' 그의 이름은 조지프 리스터(Joseph Lister) 그리고 이 말은 근대 외과를 바꿔놓았습니다. 이번에는 근대 의학의 역사에서 혁명으로 불리는 소독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수술실은 죽음의 방이었다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수술은 생명을 살리는 행위라기보다는 죽음을 미루는 고통의 의식에 가까웠습니다. 마취는 막 도입되었지만, 감염을 막는 개념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외과 의사들은 수술용 가운도 없이 환자 피로 물든 코트를 입고 여러 명의 환자를 연달아 수술했고, 사용한 수술 도구는 소독하지 ..
[의학의 역사] 의사가 아니었던 사람들, 의학을 바꾸다 - 독학자들의 위대한 기여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의학은 오랜 시간 엘리트의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경계를 넘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의학 교과서를 배우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깊게 '인간의 몸'을 생각하며 궁금해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고전 교육도, 면허도 없었지만 시대를 바꿨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의학은 이제 '누구의 지식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바버 서전과 골목 외과의사 - 면허 없는 전문가들르네상스가 막을 내리고 유럽이 근대로 접어들 무렵, 의사는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첫째는 라틴어로 진단을 내리는 학자형 의사, 둘째 직접 피를 흘리며 수술을 했던 '바버 서전(barber-surgeon), 이발사 겸 외과의사였습니다. 후자의 경우 정식 의학 교육을 받은 사람은 거의 ..
[의학의 역사] 17세기 유럽 : 현미경과 세균, 눈에 보이지 않던 세계를 보다 당신은 집에 돌아오면 손을 씻고, 깨끗하게 설거지한 컵에 물을 마십니다. 이렇게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는 우리의 평소 위생관념은 사실 아주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17세기 유럽, 처음으로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던 존재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 시작은 작디작은 유리 렌즈 하나, 그리고 호기심 많은 몇몇 사람들의 실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맨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믿는다는 것현미경이 발생하기 전 르네상스 초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질병이 어떻게 생기는 지 알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은 악령이 들었다고 들었거나 믿거나, 나쁜 공기(miasma), 신의 벌이라고 여겼습니다. 중세에는 전염병이 퍼지면 하늘을 탓하거나 마녀를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17세기 유럽, 작은 변화의 불씨가 나타났습니다. 과학혁명이 유럽 전역을 ..
[의학의 역사] 해부가 죄였던 시대, 어떻게 시체를 구했을까? 오늘날에는 해부학을 당연한 의학 교육의 일부로 여깁니다. 하지만 불과 몇 백 년 전만 해도, 해부는 '죄'였으며, 시신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금단의 물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해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교모하게, 때로는 극적으로 시신을 손에 넣었습니다. 오늘의 의학의 역사는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시신은 신성했다 - 죄와 해부의 시작중세 유럽에서 시신은 단순한 육체보다 그 이상의 가치였습니다. 기독교 교리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으며, 죽은 후 부활을 위해 시신이 온전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해부는 신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로 여겨졌으며, 대대수 지역에서 시신 해부는 불경죄로 처벌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의학 교육은 갈레노스의 동물 해부에 의존했으며, '보지 않고 그리..
[의학의 역사]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와 근대 해부학의 탄생 중세를 넘어 르네상스로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의학의 역사에서도 르네상스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합니다. 르네상스의 정신은 예술을 꽃 피웠고, 철학을 되살렸으며, 무엇보다 인간을 다시 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병원 안, 해부대 위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는 바로 그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1543년 발표한 [인체구조에 대하여]는 단순한 해부학 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권위를 넘은 관찰의 기록이자, 근대 의학의 출발선 이었습니다. '본 적 없는 해부학'을 배워야 했던 시대15세기 유럽, 의과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가장 먼저 외우는 이름은 '갈레노스(Galen)'이었습니다. 그는 2세기 로마 제국 시절의 의사이자 해부학자였습니다. 문..
[의학의 역사] 심장을 그린 남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몰래 시신을 해부하다 우리에게 지금도 널리 알려진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는 하늘을 나는 기계를 그렸고, 세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미소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hi , 1452-1519)의 가장 위대한 그림은, 화폭이 아닌 시신 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해부도를 그린 예술가이자, 생명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 철학자였습니다. 천재로 알려진 레오나르도다빈치 우리가 잊고있던 그의 의학적 역사를 같이 들여다보자! 해부학을 그린 예술가, 혹은 예술을 해부한 철학자르네상스는 인간 중심 사상이 본젹적으로 피어난 시기였습니다. 종교와 신 중심 세계관이 서서히 물러나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탐구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흐름의 중심에는 우리의 천재..
[의학의 역사] 아비센나를 만난 밤 - 천 년 전, 병원의 문을 연 사람들 지금 이 글을 병원 대기실에서 읽고 있다면, 혹은 어딘가에서 건강에 대한 고민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다면, 잠시 시간을 되돌려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병원과 의학, 그 시작은 어디였을까? 놀랍게도 현대의학의 기초를 놓은 이들은 천 년 전, 이슬람 세계에서 시작되었다. 그 중심에는 '아비센나'라는 이름이 있다. 무척이나 생소한 이름 아비센나, 오늘의 의학의 역사는 중세 이슬람 속 의학이야기 아비센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밤하늘에 떠오른 별 하나, '이븐 시나'의 이름980년 페르시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아비센나(Ibn Sina). 오늘 날 우리는 그를 아랍어 이름보다 라틴어로 더 자주 불립니다. '아비센나' - 고대 그리스 철학자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러나 동시에 '의학의 시인'이었던 ..
[의학의 역사] 약초와 마녀 사이 : 치유와 단죄가 얽힌 중세의 그림자 16세기 유럽의 한 시골 마을. 조용히 들판에서 쑥과 마늘을 캐던 노파는 해 질 무렵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에 약초를 넣고 우립니다. 그것은 아이의 열을 내리기 위한 전통적인 요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이웃들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습니다. '조용히 풀을 뜯어 밤마다 풀을 삶는 저 여인은 마녀가 분명하다!' 그렇게 그녀는 다음 해 봄, 마을 광장에 불태워졌습니다. 그녀가 남긴 것은 단지 몇 줄기 약초의 향기와, 아무도 고쳐주지 못했던 병을 낫게 했다는 무성한 소문 뿐이었습니다. 이렇듯 중세 유럽에서는 약초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식이자 권력,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여성이라는 신분, 교회라는 체제, 그리고 '마녀'라는 이름아래 폭발적으로 얽히고 의학의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