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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역사] 의학과 전쟁 : 1차 세계대전과 외과수술의 발전 20세기 초, 인류는 유례없는 규모의 전쟁을 경험하게 됩니다. 1914년 발발한 제 1차 세계대전은 단순한 정치·경제적 갈등을 넘어, 과학과 기술, 인간의 몸에 대한 인식마저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대격변이었습니다. 전선에서는 총알과 포탄, 독가스와 참호병이 일상화되었고, 이로 인한 부상과 감염은 의료 시스템의 한계를 빠르게 드러냈습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외과수술의 응급치료 체계의 비약적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의학의 역사는 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의학, 특히 외과수술이 어떤 전환점을 맞이했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전쟁 이전의 외과 수술 : 제한된 기술, 비효율적 체계1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외과수술은 제한된 기술과 경험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마취제와 방부제의 도입은 19세..
[의학의 역사]산부인과의 시작과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적 인식 변화 19세기 이전까지 여성의 몸은 의학의 주류 영역에서 배제되거나, 신비와 수치심 속에 가려진 채 다루어졌습니다. 특히 출산과 생리는 신의 영역 혹은 여성 고유의 신체적 결핍으로 해석되며, 과학적 분석보다는 종교적 ·문화적 금기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산부인과의 역사는 단순히 한 전문 진료과목의 탄생을 넘어,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인신과 의학적 권한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서사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의학의 역사에서는 오늘까지의 의료시스템 속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대상화되었고, 또 어떻게 주체적인 회복의 길을 걸어왔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고대부터 중세까지 : 신의 영역으로서의 여성의 몸고대 사회에서 여성의 생식은 주술적이며 신비로운 사건으로 여겨졌습니다. 히포크라테스 학파조차..
[의학의 역사]간호의 역사 : 나이팅게일의 혁신과 전후 변화 19세기 중엽, 전쟁터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간호라는 직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간호사의 역할을 넘어, 위생 개혁가이자 데이터 기반의 의학의 선구자였으며, 여성의 전문직 진입을 가능케 한 인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간호의 기틀은 이 한 여성의 집요하고 치열한 노력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간호의 역사는 단순히 의료의 보조적 위치를 넘어서, 사회 전반의 위생관념과 의료 시스템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혁신의 연대기입니다. 나이팅게일 이전의 간호 산업화 이전의 시기, 간호는 계획적이거나 전문적인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주로 수도원, 교회 그리고 가족 내 여성들이 환자를 돌보는 역할을 맡았으..
[의학의 역사] 최초의 여성 의사 엘리자베스 블랙웰 : 금기의 벽을 넘다 지금까지 의학의 역사 근대까지 흝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여성의 의학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9세기 마지막, 의학계는 대부분 남성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여성은 의학을 공부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건강에 관한 문제는 대부분 간접적으로만 접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넘어서, 최초의 여성 의사로서 의학에서 의학의 역사에 새로운 활로를 연 인물이 바로 엘리자베스 블랙웰(Elizabeth Blackwell)입니다. 여성 의사의 극단적 결핍을 무릅쓰고 최초의 금기를 깨드린 그녀의 여정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여성은 환자를 구하지 못하는가?당시 사회에서는 여성이 건강을 다루고, 의학을 연구하거나 실천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의학은 남성만의 영역으로 여겨졌고, 여성은 환자의 위..
[의학의 역사] 페니실린의 발견 : 최초의 항생제가 가져온 생명의 반전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인류는 세균 감염에 거의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폐렴, 성홍열, 결핵 같은 감염병은 심각한 사망 원인이었고, 수술 후 감염 역시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상적인 문제였습니다. 당시 의학은 감염을 막는 데 한계가 있었고, 환자의 생명은 운에 맡겨지다시피 했습니다. 이 시기의 의학은 고대와 중세를 지나 근대 의학의 형태를 갖춰가던 중요한 시점이었고, 세균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이 시작되던 역사적 분기점에 있었습니다. 알렌산더 플레밍과 우연의 발견1928년, 영국의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런던의 세인트메리 병원 부설 연구소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는 방치된 포도상구균 배양 접시에서 파란색 곰팡이가 자라난 것을 발견했고, 그 주변으로 세균이 자라지 않는 깨끗한 공간이 ..
[의학의 역사] 혈액형의 발견 : 수혈의 시대를 연 의학의 대 변혁 오래전, 사람들은 병이나 사고로 피를 많이 흘리면 어떻게든 피를 보충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직접 몸속에 넣어주려했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았습니다. 피를 섞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왜 그런지 아무도 몰랐던 시절이었습니다. 피가 다 똑같지 않다는 사실1901년, 오스트리아 과학자 칼 란트슈타이너는 매우 중요한 발견을 했습니다. 사람마다 피가 서로 다르고, 어떤 피는 섞으면 잘 섞이고, 어떤 피는 섞으면 덩어리져서 응고된다는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이 발견 덕분에, 그는 사람의 피를 A형, B형, AB형, O형 네가지로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아무 피나 넣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혈액혈끼리만 수혈해야 안전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의학의 역사] 듣는 의학, 보는 의학 : 청진기와 엑스레이의 발견 의학은 어떻게 감각을 넘어섰는가? 오랜 세월 동안 의학은 인간의 감각에 의존해 발전해왔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몸을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는 과정 속에서 질병을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육안이나 촉각, 청각만으로는 인체 내부를 완벽히 파악하는 데 분명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은 결국 '도구'라는 형태로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청진기와 엑스레이는 인간 감각의 한계를 보완하고, 의료 진단의 신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혁명적인 발명품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듣고 보는 의학'은, 이 작은 도구들의 탄생에서부터 시작된 위대한 여정의 결과물입니다.오늘의 의학의 역사는 이 도구들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청진기의 등장 : 귀를 대신한 도구19세기 초, 의사..
[의학의 역사] 마취의 발견 :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의 치열했던 경쟁 고통 없는 수술,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이 개념은 인류 역사 대부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칼이 몸을 가를 때, 환자는 정신이 깨어 있었고, 수술대 위는 울부짖음과 절규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류는 고통을 잠재우는 마법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법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습니다.마취 이전의 수술 : 고통이라는 공포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수술은 속도와 기술의 싸움이었습니다. 외과의사는 가능한 한 빠르게 절단하거나 절개해야했습니다. 그때 환자는 마취 없이, 깨어 있는 상태로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수술대에 묶인 채 울부짖는 환자들,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손을 떨던 외과의사들, 수술이 끝나도 과다출혈이나 쇼크로 죽어가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