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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역사

[의학의 역사] 근대 의학의 혁명 조지프 리스터 : 수술실을 살린 소독의 혁명가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소독'이라는 개념, 하지만 한때는 의사들이 수술 후 손을 씻지 않고 환자를 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의사가 발견했습니다. '우리의 손으로 환자를 죽이고 있다!' 그의 이름은 조지프 리스터(Joseph Lister) 그리고 이 말은 근대 외과를 바꿔놓았습니다. 이번에는 근대 의학의 역사에서 혁명으로 불리는 소독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수술실은 죽음의 방이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수술은 생명을 살리는 행위라기보다는 죽음을 미루는 고통의 의식에 가까웠습니다. 마취는 막 도입되었지만, 감염을 막는 개념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외과 의사들은 수술용 가운도 없이 환자 피로 물든 코트를 입고 여러 명의 환자를 연달아 수술했고, 사용한 수술 도구는 소독하지 않은 채 다시 사용되었습니다. 

 

그 결과, 수술은 성공해도 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이 50%를 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병원 내부에서 퍼지는 '병원열(Hospital Gangrene)'은 그 자체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 조용한 문제제기 - 우리는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

조지프 리스터는 영국의 외과의사로, 글래스고 대학에서 근무하던 중 이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루이 파스퇴르의 세균 이론에 관심이 많았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균이 감염을 유발한다'는 가설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만약, 감염이 공기 속 세균 때문이라면, 수술 중 세균을 막는 방법이 있다면 환자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를 고민했고 이 단순한 질문이 곧, 의학의 역사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 살균이라는 발상 - 페놀과 소독의 탄생

1865년, 리스터는 한 가지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수술 도구, 의사의 손, 상처 부위에 '석탄산(Phenol, 당시에는 카볼산이라고 불림)을 바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영국 도시들은 산업화로 인해 심각한 위생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하수 냄새와 오염된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석탄산을 하수구에 뿌려 악취를 줄이는 실험이 진행중이었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악취뿐 아니라 감염성 질환까지 줄어드는 현상이 관찰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조지프 리스터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웠습니다. '만약 석탄산이 하수에서 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다면, 수술 부위의 감염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이 아이디어를 바로 파스퇴르의 세균 이론과 연결시켜, 석탄산을 최초의 외과용 소독약으로 사용했습니다. 결과는 드라마틱했습니다. 수술 후 상처 감염률이 급격히 낮아졌고, 특히 복합 골절이나 절단 수술 후 절단부위 괴사 확률이 눈에 띄게 감소했습니다. 조지프 리스터는 이를 근거로 1867년, 세계 최초로 '소독 수술법(Antiseptic Surgery)'을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이제 외과 수술은 '운에 맡기는 행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 그를 비웃은 동료들

하지만 리스터의 이론은 즉각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의학계는 여전히 감염은 나쁜 체질 때문이던가 공기의 성질 때문이라는 전통적 이론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세균? 보이지도 않는데?'라며 그를 비웃고, 손을 씻고, 도구를 삶고, 가운을 바꾸는 행위는 불필요하고 번거로운 일로 치부되었습니다.

 

한 동료의 외과의는 '내 손은 수십 년간 환자의 피를 흘리며 익은 손이다. 그 손에 세균이 있을 리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그때의 위생관념은 당시에 상당히 일반적인 인식이었습니다. 

 

  • 리스터의 집념, 그리고 시대의 전환점

그럼에도 리스터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럽 전역과 미국을 돌며 강연했고, 실제 수술 결과와 통계를 통해 변화를 설득하였습니다. 결국, 그의 방법을 도입한 병원에서는 감염률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병원 내 사망률을 크게 낮출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소독, 살균, 위생이라는 단어가 의학계 기초 개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1890년대 독일의 외과의사 에밀 폰 베르킹과 파울 에를리히 등이 리스터 이론을 바탕으로 무균수술(Aseptic Surgery) 개념까지 확립하게 됩니다.

 

  • 손 씻음의 혁명, 생명을 바꾸다

오늘날 우리는 수술 전에 손을 씻고, 장갑을 끼며, 모든 수술 도구를 멸균합니다. 지금은 당연한 이 절차가 생길수 있었던 건, 누군가 처음 그 당연함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조지프 리스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싸운 의사였으며 그 싸움은 외과학을 과학으로 바꿨습니다. 그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환자에게 손을 대기 전에, 먼저 손을 씻으로'는 단순한 말이었습니다. 

 

보너스 : 수술장갑의 탄생, 사랑에서 시작된 위생

이번 보너스 이야기는 수술장갑의 탄생이야기 입니다. 수술장갑은 처음부터 '위생 목적'으로 개발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1890년대, 미국 존스 홉킨스 병원 외과의사 '윌리엄 할스테드(William Halsted)'는 매일같이 수술을 집도했습니다.

그때 그의 간호 조수이자 연인이었던 '캐롤라인 햄튼(Caroline Hampton)'이 수술용 소독약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고통을 겪고 있엇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할스테드는,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특수 고무회사에 맞춤형 고무장갑을 주문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수술용 고무장갑이었습니다. 햄튼은 장갑을 착용한 뒤에도 능숙하게 수술을 도왔으며, 감염률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이를 본 동료의사들도 장갑 착용을 따라하면서, 수술장갑 착용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고무장갑을 개별 주문이 가능했던 부유했던 의사의 사랑을 위한 배려가 외과 위생 혁신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두사람은 실제 결혼까지 성공했고, 수술장갑은 의학과 로맨스가 만든 발명품으로 남았습니다. 오늘날의 수술실에서 흔히 보이는 라텍스 장갑의 이야기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