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의학의 역사

[의학의 역사] 의학과 전쟁 : 1차 세계대전과 외과수술의 발전

20세기 초, 인류는 유례없는 규모의 전쟁을 경험하게 됩니다. 1914년 발발한 제 1차 세계대전은 단순한 정치·경제적 갈등을 넘어, 과학과 기술, 인간의 몸에 대한 인식마저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대격변이었습니다. 전선에서는 총알과 포탄, 독가스와 참호병이 일상화되었고, 이로 인한 부상과 감염은 의료 시스템의 한계를 빠르게 드러냈습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외과수술의 응급치료 체계의 비약적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의학의 역사는 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의학, 특히 외과수술이 어떤 전환점을 맞이했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의학의 역사 : 제1차 세계대전과 외과수술의 발전

  • 전쟁 이전의 외과 수술 : 제한된 기술, 비효율적 체계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외과수술은 제한된 기술과 경험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마취제와 방부제의 도입은 19세기 중반에야 이루어져있으며, 감염에 대한 인식조차 미흡했던 시절이 길었습니다. 대부분 외과적 처치는 위급 상황에서 이루어졌고, 수술 자체가 생존률보다 사망률을 높이는 요인이 되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당시  병원은 감연의 온상이었고, 전쟁터에서의 외상은 의료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초과했습니다. 군의관들은 간단한 절단이나 봉합 이상의 치료를 제공하기 어려웠고, 많은 병사들이 출혈, 쇼크, 패혈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데 있어 1차 세계대전 커다란 자극이 되었습니다. 의료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 실험되고 개조되며 재구성되었습니다. 

 

  • 참호전과 부상 유형의 변화와 플라스틱 수술 및 재건 외과의 시작

제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라는 새로운 전투 양식을 등장시켰습니다. 병사들은 수개월 혹은 수년을 참호에서 생활했고, 그 환경은 극도로 비위생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전투 양식은 특정한 유형의 부상(파편 상처, 폭발에 의한 절단, 안면 및 두부 손상 등)을 급증시켰고, 외과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기술적 접근을 요구받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참호에 떨어진 포탄은 단순히 사지를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파편이 뼈와 근육 깊숙이 박히거나 복합골절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전까지는 절단으로 대처하던 이러한 부상에 대해, 외과의들은 점차 사지를 보존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조직 재건, 피부 이식, 금속 내고정술 등 다양한 수술법이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낳은 또 하나의 의료 혁신은 '재건 외과' 또는 오늘날의 플라스틱 수술의 출현입니다. 특히 참호전에서 안면과 두부를 중심으로 한 심각한 외상을 입은 병사들은 단순한 생존을 너머, 이후의 삶의 질 문제까지 마주해야 했습니다. 얼굴이 붕괴된 병사들은 사회적 낙인과 심리적 고립 속에서 살아가야 했고, 이들을 위한 외과적 복원이 절실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이 과정에서 뉴질랜드 출신 외과의사 해롤드 길리스(Harold Gillies)는 얼굴 재건 수술의 선구자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심각한 안면 손상을 입은 병사들을 치료하며, 기존 수술로는 감당 할 수 없는 영역에 사로운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대표적 공헌은 피판술(flaps)이라 불리는 조직 이식 기법으로, 이는 피부나 연부 조직을 일정 혈류를 유지한 채 다른 부위로 이동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단지 형태 복원을 넘어 기능 복원까지 가능하게 했고, 길리스의 수술을 받은 많은 병사들은 다시 말하고, 음식을 먹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런던에 전문 병원을 설립해 지속적인 재건 수술을 이어갔으며, 이후 그의 조카인 아처 길리스와 함께 영국 재건외과학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길리스의 업적은 단순히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이 아닌, 전후 복지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치유의 외과'라는 관점을 제시한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이는 훗날 화상 치료, 선천기형 교정, 성전환 수술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며, 현대 플라스틱 수술의 윤리적 ·임상적 토대를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 응급의료 시스템과 수술실의 구조 변화

1차 세계대전 중 등장한 '이동수술대(Mobie Surgical Units)'는 외과의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이는 전선 가까이에 수술이 가능한 시설을 마련해, 부상직후의 치료를 신속하게 시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후방 병원까지의 이송 시간을 줄이며 생존율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습니다.

 

또한, 수술실의 구성 역시 이 시기 변하했습니다. 멸균 장비, 집중 조명, 이동형 침대 등은 1차 대전 당시의 실전 경험에서 출발해 점차 표준화되었고, 현대 수술실의 형태를 갖추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수술의 방식뿐 아니라 수술이 이루어지는 환경 자체가 보다 체계적으로 변모한 시기였습니다.

 

  • 수술 교육의 변화와 외과의 위상 제고

전쟁은 의료진의 부족 문제를 일으켰고, 그 결과로 수많은 젊은 의사와 의대생들이 전선에서 실전 경험을 쌓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기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다양한 외과 수술을 접하면서, 수술 교육은 자연스럽게 실용 중심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의과대학 컬리큘럼 역시 전쟁 이후 이를 반영해 실습과 응급 대응 교육을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외과의사의 위상도 달라졌습니다. 전쟁 이전까지는 내과나 병리학이 주류였지만, 외과는 빠르고 결정적인 개입을 통해 생명을 구하는 '전장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는 이후 외과가 의학 내에서 중심적 분야로 자리잡는 데 영향을 주었고, 외과 전문의라는 개념도 본격화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인간의 몸을 가장 잔혹하게 파괴한 사건 중 하나였지만, 그 덕분에 의학은 놀라운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외과수술은 이 전쟁을 계기로 단순한 절단과 봉합의 기술을 넘어서, 조직 재건과 삶의 회복을 추구하는 전문 영역으로 진화했습니다. 전쟁은 본질적으로 비극이지만, 그 속에서 인간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그 노력은 지금도 외과 현장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외과 수술의 정밀함과 다양성은, 이 잔혹했던 20세기 초의 전장 위에서 시작된 실험과 시행착오의 결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