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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역사

[의학의 역사] 17세기 유럽 : 현미경과 세균, 눈에 보이지 않던 세계를 보다

당신은 집에 돌아오면 손을 씻고, 깨끗하게 설거지한 컵에 물을 마십니다. 이렇게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는 우리의 평소 위생관념은 사실 아주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17세기 유럽, 처음으로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던 존재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 시작은 작디작은 유리 렌즈 하나, 그리고 호기심 많은 몇몇 사람들의 실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맨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믿는다는 것

현미경이 발생하기 전 르네상스 초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질병이 어떻게 생기는 지 알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은 악령이 들었다고 들었거나 믿거나, 나쁜 공기(miasma), 신의 벌이라고 여겼습니다. 중세에는 전염병이 퍼지면 하늘을 탓하거나 마녀를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17세기 유럽, 작은 변화의 불씨가 나타났습니다. 과학혁명이 유럽 전역을 흔들며, 자연현상을 관찰과 실험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이어졌으며, 이때 현미경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의학의 역사 현미경의 발견

  • 현미경의 조용한 등장 - 안톤 판 레이우엔훅의 렌즈

우리가 아는 첫 '실용적 현미경'은 네덜란드에서 탄생했습니다. 그 주인공은 안톤 판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 1623~1723)입니다. 그의 직업은 원래 옷감 상인이었고, 광학을 전공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유리 렌즈 연마에 재능이 있었으며, 작은 세계에 대한 지대한 호기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가 만든 렌즈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복잡한 현미경과는 달랐습니다. 단 하나의 볼록렌즈로 구성된 단순한 구조였지만, 배율은 최대 270배에 달했습니다. 그 렌즈를 통해 그는 한 방울의 물 속에서 움직이는 작은 존재들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세균, 미생물, 단세포 생물을 눈으로 본 순간이었습니다.

 

  • 나는 살아 있는 작은 동물들을 보았다.

1674년 레이우엔훅은 우물물, 침, 심지어 자신의 치아 사이에서 채취한 물질을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움직이는 작은 점들, 즉 박테리아와 원생동물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이 존재들을 '작은 동물cules(animalcules)'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의 미생물(microorganism)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 그는 스스로 자연의 언어를 새로 정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는 이 발견을 '유명한 학자나 귀족'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만든 렌즈와 호기심으로 이뤄낸 쾌거입니다.

 

하지만, 레이우엔훅의 발견은 당시 사람들의 인정은 물론, 신뢰를 얻지도 못 했습니다. 17세기 유럽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생명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 급진적이었습니다. 일부는 그가 조작했다고 주장했고, 일부는 렌즈가 왜곡된 상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믿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영국왕립학회(Royal Society)에서도 그를 실험으로 시험했습니다. 학자들이 그의 앞에서 직접 렌즈로 샘플을 보고, 움직이는 미생물을 확인한 뒤에야 믿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는 왕립학회의 회원으로 초대받을 수 있었고, 생애 동안 500편이 넘는 미생물 관찰 기록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 로버트 후크의 [미크로그라피아] - 세포라는 단어의 탄생

레이우엔훅과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는 또 다른 인물이 현미경을 들고 있었습니다. 바로 로버트 후크(Robert Hooke, 1635 ~ 1703)입니다. 그는 1665년, 역사적인 책 [미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를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현미경으로 본 벼룩, 바늘 끝, 곰팡이, 식물 조직 등을 정밀하게 그림으로 남겼고, cell(세포)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그가 본 코르크의 구조가 수도원의 방(cell)과 닮았다 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오늘날 생명과학의 기본 단위가 된 이 단어가 렌즈 하나로부터 태어난 것입니다. 

 

보너스 : 미크로라피아(Micrographia) - 1665년 : 현미경 광찰 기록서

이 책은 인류 역사상 현미경으로 본 세계를 처음으로 정밀하게 묘사한 도서입니다. 후크는 현미경으로 코르크 조직을 관찰하면서, '작은 방'처럼 보이는 구조를 '셀(cell)이라 명명했는데, 이것이 세포 개념의 시초였습니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소재가 등장하며, 각 대상을 정밀한 삽화와 함께 소개했습니다. 이 삽화는 미적으로도 뛰어나 과학사뿐 아니라 미술사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출간 당시 일반 대중에게 '보이지 않던 세계'에 대한 충격과 경외심을 안겼주었고, 이후 17~18세기 과학자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으며, 현미경 과학의 기반이 되는 교과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단 하나의 렌즈가, 단 하나의 책이 우주의 또 다른 차원을 보여준 것, 그것이 [미크로그라피아]의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 세균의 존재가 질병과 연결되기까지

비록 이 시기에 드디어 세균이 발견되었지만, 그것이 질병이 원인이라는 이론은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병을 '기운'이나 '공기' 탓으로 돌렸고, 세균 이론(germ theory)이 정립되기까지는 100년 이상의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레이우엔훅과 후크의 발견은 현미경이라는 도구과 인류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안에도 '생명'이 존재 한다는것, 이것이 과학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발견 중 하나였습니다.

 

  • 렌즈를 통해 열린 또 하나의 우주

17세기 유럽은 육안의 한계를 벗어나기 시작한 시대였습니다. 현미경은 단지 작은 물체를 확대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 그 자체를 확장하는 계기였습니다. 한방울의 물, 썩은 치아 사이, 빵 곰팡이 등등 그 안에서 움직이던 세상은 인류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바이러스, 세균, 백신, 미생물 군집까지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작은, 렌즈하나, 눈을 뗄 줄 몰랐던 한 사람의 호기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