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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역사

[의학의 역사] 마약 시리즈 -의료용 대마초, 금기의 재조명

오늘날 ‘대마초’라는 단어는 여전히 불법, 환각, 마약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식물은 한때 인류 문명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약물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통증, 불면, 소화불량, 신경계 질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의료적 효능이 인정되었으며, 오랜 기간 약용 식물로 자리 잡아왔습니다. 20세기 중반 들어 대마초는 세계 각국에서 법적으로 금지되며, 마약과 동일한 수준의 규제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의료적 가치가 재조명되며, 일부 국가에서는 의료용 대마의 합법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대마의 의료적 역할과, 정치적 금지의 역사, 그리고 오늘날의 제도 변화까지 그 흐름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대마의 의료적 사용은 새롭지 않다

대마초의 약리 작용은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시기부터 활용되었습니다. 고대 중국 의학서인 『신농본초경』에는 대마씨가 통증 완화와 부종 치료에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집트와 인도 문명에서도 대마초를 진통, 항염, 항경련제로 활용한 흔적이 다수 발견됩니다. 인도에서는 특히 ‘바사(भांग)’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정신적 안정과 종교적 의식에서 쓰였고, 고대 히브리 기록에도 대마를 성유에 넣어 신체 질환 치료에 활용한 사례가 등장합니다.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는 대마 추출물이 편두통, 천식, 관절염 치료제로 사용되었고, 19세기 유럽에서는 대마를 알코올에 녹인 '캔나비스 틴크(Cannabis Tincture)'가 널리 유통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대마초는 오늘날처럼 흡연을 통한 향정신성 효과보다는, 의료용 추출물 형태로 복용되는 약제로 사용되었으며, 의사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처방 약물로 간주되었습니다.

미국의 금지와 역사 속 정치적 낙인 

의료용 대마의 단절은 과학적 이유보다 사회적·정치적 배경에 의한 금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특히 미국은 20세기 초, 대마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며 강력한 낙인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과 함께 미국 내 실업률이 급등하던 시기, 정부는 사회 불안을 해소하고자 특정 계층에 대한 통제 강화에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멕시코계 이주민과 흑인 커뮤니티의 대마초 흡연 문화가 공공질서 훼손의 원인처럼 묘사되었고, 보수적 정치인들과 언론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특히 대마초를 흡연한 사람들의 ‘비정상적 행동’을 강조하며 불안감을 조성했고,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과 삽화로 대마를 ‘광기의 약물’로 묘사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당시 마약국장인 해리 앤슬링어(Harry J. Anslinger) 는 “마리화나를 피우면 백인 여성들이 흑인 남성과 어울리게 된다”는 등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바탕으로 마약 정책을 강경하게 이끌었으며, 1937년 ‘마리화나세법(Marihuana Tax Act)’ 제정을 주도합니다. 이 법은 실질적으로 대마의 의료·산업용 사용을 봉쇄하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대마는 연방정부 차원의 단속 대상이 됩니다.

 

더 나아가, 1971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을 선포하며 대마초를 마약류 1급(가장 위험한 약물)으로 분류합니다. 이는 코카인, 헤로인과 같은 약물과 동일한 등급이었으며, 이 결정은 명백한 정치적 전략으로 간주됩니다. 훗날 닉슨 행정부 내부 인사였던 존 에를리히먼(John Ehrlichman)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흑인과 반전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마약 정책을 이용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대마에 대한 의료적 논의조차 금기시되도록 만들었고, 의학계에서도 관련 연구 자체가 수십 년간 중단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즉, 대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과학적 근거보다 정치적 조작에 의해 형성된 부분이 크다는 점에서, 그 평가와 접근 방식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의료 대마 합법화 흐름 

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의료용 대마초 합법화를 선언하며 최초로 금기의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이 조치는 단순한 지역 정책을 넘어,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의 마약 정책 충돌을 낳은 상징적 사건이었고, 이후 미국 내 30개 이상의 주가 의료용 대마를 허용하게 됩니다. 그 흐름은 미국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캐나다, 독일, 이스라엘, 네덜란드, 체코 등 수십 개국이 의료용 대마 프로그램을 도입했으며, 특히 이스라엘은 의료 대마 연구와 생산을 국책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2019년부터는 대마 성분 의약품(에피디올렉스 등)의 수입이 허용되며, 희귀난치 질환 환자에 한해 의사 소견과 식약처 승인을 거쳐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가 마련되었습니다.

 

의료의 역사 마약 대마초

현재 의료 대마의 적용 분야는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기존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난치성 소아 간질(예: 드라벳 증후군) 환자에게는 CBD(칸나비디올) 성분이 부작용 없이 발작 빈도를 크게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보고되고 있습니다. 또한 항암 치료로 인한 구토와 식욕 부진, 불면증, 만성 신경통, 자가면역성 통증 질환 등에서 대체 치료제로 점차 활용되고 있습니다.

의료용 대마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의료용 대마 합법화에 대한 지지율이 80%를 넘었으며, 국내에서도 젊은 세대와 환자 가족 중심으로 “규제보다 공공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다만 THC(환각 유발 성분) 함량과 재배·유통 구조에 대한 체계적 기준 마련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며, 무분별한 합법화는 오히려 남용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존재합니다. 결국 의료용 대마의 합법화는 ‘허용’이 목적이 아니라, 의학적 근거와 공공안전을 조화롭게 균형 잡는 제도 설계가 관건입니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신중한 규제와 함께, 의료진·환자·정책입안자 간의 투명한 대화 구조와 연구 활성화가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약인가, 마약인가, 이제는 구조를 보아야 한다

의료용 대마는 본래부터 ‘신약’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사용해온 전통적인 치료 수단이었으며, 현대에 들어 정치적 이유로 단절된 약물이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금기의 이면에서 그 가치를 되찾아가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무분별한 사용과 오남용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금기만으로는 치료의 가능성을 검토할 수 없고, 의학과 과학은 이념보다 먼저 실증과 근거를 따라야 합니다. 대마의 의학적 가능성을 신중하고 투명하게 검토할 수 있는 제도와 논의 구조가 함께 따라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대마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단지 약물 하나를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과거의 낙인을 넘어서려는 사회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