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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역사

인공지능(AI) 의사의 전신 - IBM 왓슨부터 ChatGPT까지

의학의역사 인공지능 의사

기계가 진료하는 시대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과거에는 ‘의사가 되는 것’이 지식, 직관, 경험의 결정체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이제는 의료현장에 인공지능이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계산이나 자료 정리 수준이 아닌, 진단을 제안하고, 치료법을 조율하며, 환자의 예후까지 분석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인공지능이 의료를 보조하기 시작한 초기 단계부터 오늘날의 대화형 AI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의 이면에는 기술 진보와 함께 의료윤리, 데이터 접근성, 신뢰성 확보라는 복합적인 과제가 존재해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AI 의사’라는 개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IBM 왓슨(Watson)에서부터 ChatGPT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으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IBM 왓슨 - AI가 처음 진료실에 들어선 순간

2011년,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을 이기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IBM 왓슨은 단순한 게임용 AI가 아니었습니다. IBM은 곧바로 이 기술을 의료 분야에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고, 이듬해인 2012년부터는 Memorial Sloan Kettering 암센터와 협력하여 암 진단 및 치료에 특화된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를 개발했습니다. 왓슨은 수백만 건의 논문과 진료기록, 임상시험 데이터를 학습하여, 환자의 병력과 유전정보를 분석하고 그에 적합한 치료 옵션을 제시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특히 방대한 문헌 검색 능력은 인간 의사가 놓칠 수 있는 정보를 보완해준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한계도 드러났습니다. 임상 현장에서 환자의 복잡한 상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거나, 특정 국가의 치료 가이드라인과 맞지 않는 결과를 도출하는 사례도 있었으며, 가장 큰 문제는 ‘의사 결정의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부 병원에서는 사용을 중단하거나, 제한적으로만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BM 왓슨은 AI가 의료 시스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이후 AI 의료의 흐름은 더 정교하고 직관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AI 의료의 진화 - 규칙기반에서 확률기반으로

IBM 왓슨은 사실상 ‘지식기반 전문가 시스템’이었습니다. 이는 미리 정해진 규칙과 구조에 따라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초기에 유용하지만 복잡한 상황에서는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이후 등장한 AI 시스템들은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특히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기반으로 더욱 유연하게 발전해갔습니다. 의료영상 분석 분야에서 대표적인 성과는, 피부암 진단에서 AI가 숙련된 피부과 전문의보다 높은 정확도를 기록한 사례였습니다. 폐결절이나 당뇨성 망막병증, 유방암 영상 진단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AI의 성능은 점차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20년 이후 팬데믹 상황 속에서, AI는 감염 확산 예측, 병상 수요 분석, 백신 개발 시뮬레이션 등 공공보건 영역에서 강력한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AI의 역할은 진단 보조에서 치료 전략 수립, 임상시험 설계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확장되었습니다.

 

ChatGPT의 등장 -  대화형 AI의 새로운 가능성

 

2022년 말 공개된 ChatGPT는 단순한 챗봇의 수준을 뛰어넘은 대화형 AI로, 의학 분야에서도 빠르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단순 정보 검색을 넘어, 환자의 증상 설명을 듣고 감별진단 목록을 제시하거나, 진료기록을 요약하고, 복잡한 의료 논문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는 등 다양한 기능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의대생, 전공의, 임상의사들이 의료지식을 정리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ChatGPT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논문 초안 작성, 환자에게 전달할 설명 자료 작성 등에도 점점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ChatGPT는 아직 법적·임상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의료적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여전히 전문가의 검토가 필수이며, 모델이 생성하는 답변에는 사실 오류가 포함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합니다. 따라서 보조 도구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며, 인간 전문가의 판단력을 보완하는 협력적 관계로 보는 시각이 보다 바람직합니다

 

AI가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고, 업무 효율을 개선하며, 반복적인 행정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다는 점은 의료시스템의 혁신을 예고합니다. 그러나 환자의 감정, 맥락, 삶의 가치까지 고려해야 하는 ‘의료’의 본질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특히 윤리적 판단, 복잡한 커뮤니케이션, 돌봄에 기반한 결정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 있으며, AI는 이들 결정을 보완하는 ‘도구’로서 그 가치를 발휘합니다. 의료윤리, 개인정보 보호, 설명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 등의 문제는 앞으로 AI 의료가 마주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맺으며: AI 의사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AI가 의사를 대체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의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대신에 ‘AI와 함께 일하는 의사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가 중요한 질문이 되었습니다. IBM 왓슨이 열었던 의료 AI의 문은, ChatGPT와 같은 대화형 AI를 거치며 더욱 넓고 깊은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AI는 의료 현장에서 보편적인 존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어야 하며,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AI는 ‘도구’입니다. 다만 그 도구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생각처럼 말하며, 우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