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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역사

[의학의 역사] 코로나19와 1918년 스페인 독감의 비교 : 팬데믹의 두 얼굴

감염병은 인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21세기의 코로나19, 그리고 20세기 초의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 수억 명에게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팬데믹입니다. 약 100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 두 감염병은 전파 양상, 치명률, 의쇼 시스템의 대응, 그리고 사회적 파장에 있어 서로 다른 면모를 보였지만, 동시에 공통적인 교훈과 구조적 문제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의학의 역사에서는  두 팬데믹의 주요 특성을 비교하고, 인류가 위기를 어떻게 맞이하고 극복해왔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의학의 역사 코로나19와 스페인독감의 비교

 

  • 발생 배경과 초기 확산

1918년 스페인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발생했습니다. 병사들이 세계 곳곳으로 이동하며 감염병을 빠르게 확산시켰고, 전쟁속에서 피로 누적과 영양부족, 위생 환경의 열악함은 치명률을 더욱 높였습니다.스페인에서 처음 보도되었기에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나, 실제 발생지는 미국 혹은 프랑스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반면 코로나19는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처음 보고되었으며, 몇 주 만에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고속철도, 항공기, 글로벌 관광과 무역이라는 현대적 연결망은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상상 이상으로 가속화시켰습니다. 두 감염병은 모두 빠른 전파가 특징이었지만, 1918년은 전시 중이라는 특수 상황이었고, 2020년은 세계화와 밀접한 일상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 바이러스 특성과 치명률

스페인독감은 H1N1 인풀루엔자 바이러스였으며, 특히 젊고 건강한 성인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이는 '사이토카인 폭풍'이라 불리는 면역 과잉반응 때문으로, 정상 면역 반응이 오히려 신체를 파괴하는 현상입니다. 전체 사망자는 약 5천만 명에서 1억 명으로 추정되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감염병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스페인독감은 3차에 걸쳐 유행했으며, 특히 1918년 가을에 발생한 2차 유행이 가장 치명적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감염자 수뿐 아니라 사망자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이는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로 인해 전염성과 독성이 급격히 높아졌기 떄문으로 분석됩니다. 또한, 당시 세계는 전시 상황으로 영향 부족, 의료 자원의 결핍, 위생 악화 등이 겹쳐 치사율을 더욱 끌어올리는 환경이었습니다. 스페인독감은 단순한 독감의 수준을 넘어선 '전신 질병'이었으며, 특히 폐에 심각한 염증을 일으켜 빠른 시간 내에 질식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코로나19는 SARS-CovV-2라는 코로아바이러스 계열로, 초기에는 고령자와 기저질 환자에게 특히 치명적이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하면서 감염력은 높아졌지만 치명력은 점차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코로나10는 초기 변이(우한형, 알파 등)에서 델타, 오미크론 등으로 진화하며 감염력과 병원성이 달라졌습니다. 델타 변이는 폐 손상을 동반한 중증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았고, 의료 시스템에 심각한 압박을 주었습니다. 반명 오미크론 변이는 상기도 중심의 감염 특성을 보이며 전파력은 강하지만 상대적으로 중증도는 낮아지는 양상을 띠었습니다. 전 세계 사망자는 2024년 기준 약 700만 명 이상으로 집계되며, 감염자 수가 워낙 많아지며 절대적인 사망자 수는 여전히 큰 규모를 유지했습니다. 또한, 장기 후유증(롱코비드)이라는 새로운 보건 과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 정보의 확산과 사회적 반응과 팬데믹이 남긴 사회적 ·문화적 유산

스페인독감은 언론 검열의 강했던 전시 상황에서 충분한 정보 공유가 어려웠습니다. 스페인은 중립국이었기에 독감 관련 보도가 허용되었고, 그로 인핸 '스페인'이라는 이름이 붙는 오명을 안았습니다. 당시 일반 대중은 감염병의 실체를 잘 알지 못한 채 두려움과 루머에 노출되었고, 각종 미신과 민간요법이 난무했습니다. 반면 코로나19는 정보가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에 발생했습니다. 초기에는 정부 발표와 전문가 의견이 혼재되었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가짜뉴스, 음모론, 백신 불신 등이 사회를 혼란에 빠드렸습니다. 과학적 사실조차 정치화되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났고, 일부 국가는 코로나19 방역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1918년 팬데믹은 이후 국제보건기구(WHO) 창설, 공중보건학의 발전, 대유행 대비 정책 수립 등 현대 감염병 대응 체계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당시 경험은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두려움이 단순히 생물학적 위협을 넘어, 사회 질서와 인간관계에 깊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일깨웠습니다. 코로나19는 디지털 기술의 일상화, 비대면 사회의 구조화, 개인의 건강 주권 의식 향상 등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촉발시켰습니다. 동시에 고립, 정신 건강 악화, 교육 격차, 돌봄의 불평등 등 사회 구조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팬데믹 이후의 회복이 단지 감염률 감소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100년의 간격을 두고 반복된 이 두 팬데믹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과 공동체, 그리고 과학의 책임을 묻는 거울이었습니다. 과거의 교훈을 되짚고, 오늘의 실패를 성찰하는 것이야말로 다음 감염병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백신일 것입니다.